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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조, 개인적인 캐해석
* 미도리 시점
검게 물들여진 하늘에선 흰 눈이 떨어져내렸다. 별 하나 반짝이지 않은 그저 검은 하늘에 대조된 색으로 하얗고 보드라운 그리고 차가운 눈이 하늘에서 솔솔 내렸다. 위쪽은 그렇게 어두운데 아래인 지상은 빛으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커다란 트리 위에 장식된 큰 별이 빛내는 빛, 장식과 가게들의 빛. 위는 고요했고, 아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북적였다.
나는 크리스마스가 싫었다. 사람은 많고 북적이는 거리에 시끄러운 소음들, 녹으면 질척거리는 눈, 추위. 이 요소들 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크리스마스라 하면 그저 집에서 따뜻한 코타츠 속에 들어가 좋아하는 인형을 껴안고 잠을 청하는 날. 그 것 뿐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는.
선배는 내가 선호하던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제멋대로고 앞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타입. 정반대의 사람. 접점도 없을 것이고 대화조차 할 일이 없겠지. 하지만 겨울인 지금은 선배를 선, 후배만의 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감정을 표현하자면 좋아한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선배는 나를 후배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선배와의 연을 자연스럽게 해준다면 이 마음이 닿던 닿지 않던 별로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선배는 지금 내 곁에 있었다.
앞에는 서툰 솜씨로 묶은 리본이 있는 목도리를 두르고, 항상 밝고 따뜻함을 주던 선배가 있었다. 선배도 역시 사람이었는지 귀도 코도 빨개진 채 양손을 입으로 호호 불기도 하면서 걸어갔다. 눈이 내려 더욱 추운 크리스마스, 선배는 저녁이 이제 막 시작될 즈음 우리 집 앞으로 와 날 불러내었다. 솔직히 정말 나가기 싫었다. 귀여운 유루캬라 인형들과 따뜻한 코타츠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잠시 자신과 어딜 가달라는 선배의 부탁은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 밝은 얼굴로 자신을 이끄는 그 모습마저 이제는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래서 급하게 옷가지를 입고 목도리도 두르지 않은 채 장갑만 들고 나왔다.
얼마 전 부활동을 마치고 옷을 다 갈아입고 하교하기 위해 가방 속을 뒤졌지만 목도리는 보이지 않았고 그에 이번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사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가져간 것일까. 좋아하던 목도리였는데 한동안 잃어버린 목도리를 생각하면서 우울했던 기억이 났다. 목에 천이 하나 없는 것만으로 몸 전체가 춥게 느껴졌지만 옆에 있는 선배가 그 추위를 날릴 듯한 텐션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고 추위가 조금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손이 시려운 듯 자주 입김을 불고 맞붙혀서 비비던 선배의 손은 추위에 바람까지 겹쳐 무척 빨개져 있었고 그에 장갑 한 쪽을 벗어주었다. 괜찮다고 손사레 치던 선배의 손을 잡아 강제로 왼쪽에 장갑을 끼워주었고 남은 손은 서로 손을 잡아서 최대한 온기를 유지하고자 했다. 선배랑 이어진 곳은 손밖에 없었지만 손만큼은 장갑을 꼈을 때처럼 따뜻해진 착각을 일으켰다. 즐거운 듯이 말을 하며 걸어가던 선배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더니 트리가 잘 보이는 장소의 정 중앙으로 자신을 이끌었다. 트리가 보고싶었던 걸까. 선배답네. 선배가 곁에 있음에도 선배 생각만을 하며 트리 앞으로 갔고 목적지에 도착한 선배는 자신의 손을 놓았다. 잠시라도 잡아서 따뜻했던 손의 온기가 떠나가자 다시 차가운 바람이 닿았다.
선배는 잡았던 손을 바라보다 주먹을 살짝 쥐고는 자신의 목에 둘려져있는 붉은 목도리를 풀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내 목에 둘러주었다. 조금이라도 녹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차갑게 얼어있는 선배의 손이 굳은 것처럼 매듭을 짓는 손짓이 엇나갔다. 그래도 꼭 자신이 하고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목에 두른 목도리의 매듭을 지은 선배는 다 묶여진 붉은 목도리와 자신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웃었다.
'역시 잘 어울린다.'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목도리가 없는 줄 알았던 걸까. 아니 선배는 그저 목도리를 하고 나오지 않았던 나를 위한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제멋대로지만 히어로.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하는 사람. 그게 모리사와 치아키라는 사람이었으니까.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는 자신을 가로막고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선배는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 타카미네."
목도리의 감사인사라던가 사람들의 북적임 같은 건 한순간이 귀에서 사라졌다. 그저 선배의 한 마디가 제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의도하지 않은 눈물이었지만 몸이 자연스레 눈물샘을 자극했고 멈추지 않는 눈물들이 차가운 뺨을 따라 흘렀다. 갑작스레 터진 눈물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선배는 그에 가볍게 웃으면서 장갑을 빼더니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어서 그런지 손이 따뜻했다. 그 온기에 기대 듯 눈물을 닦아주던 선배의 손을 붙잡고 꼭 안았다. 선배, 어째서 선배는 내가 기뻐할 일만 하는거에요? 희망만 주려는 거에요? 선배는 이제 몇달 후에 졸업하는데 그 이후에도 날 좋아해줄 수 있어요? 그런 말들을 삼키며 나는 선배를 껴안고 그저 울기만 했다. 선배는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토닥여 주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고개를 들자 선배는 다 울었냐면서 머리를 흐트려놓았다. 평소 같았다면 뭐하는 거냐고 따졌겠지만 지금은 그런 여력이 없었다. 울어서 엉망진창인 얼굴인데도 선배는 '울어도 타카미네는 잘생겼구나.'란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앞서가는 선배에 입을 벌려 속마음을 뱉었다.
"좋아해요, 모리사와 선배. 줄곧, 앞으로도 계속."
크리스마스 거리의 중간 지점이었기에 사람들과 가게홍보 소리에 묻히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잡은 선배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들었구나. 나는 그런 선배의 손을 꼭 붙잡았고 선배는 앞만 바라보며 걸었지만 귀까지 빨개진 모습이 뒤에서도 다 보였다. 평소에는 이보다 낯부끄러운 말들도 잘 내뱉으면서 본인의 일만 되면 이렇게 서툴다. 유성대에 들어갈 때에도, 부활동에 들어갈 때에도 그렇게 당당한 사람이. 선배의 체향이 묻은 붉은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채 선배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 있잖아요 선배, 크리스마스 선물 무엇을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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